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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iary

작은 땅의 야수들

훌륭한 소설 한 권을 또다시 만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지난 며칠 만에 단숨에 읽어버렸다.

요즘 책을 읽는 패턴은 우선 한국어로 보통 읽고 마음에 드는 경우 영어공부를 위해 원본으로 다시 읽는 식인데 이 책은 분명히 영어 원본으로 읽게 될 것이다.

티끌 없는 번역을 한 박소현 번역가의 고뇌를 엿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.

 

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잔인하다.

그 야수와 같은 본성으로 서로를 할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갖고 있는 존엄성, 순수함, 양심과 연민 등과 대비되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.

누가 누구에게 더 가혹했는가를 생각하다가 그 시대 전체의 아픔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다음은 이 시대의 아픔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오게 되었다.

 

주인공들에게 투영된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정도가 궁금했다.

그 궁금증은 어떤 경험과 배움이 이토록 다양한 캐릭터들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.

그래서 김주혜 작가의 프로필을 다시 보니 나보다 어린 미모의 여성이라서 다시 한번 놀랐다.

글에 엄청난 애정을 쏟았을 텐데, 아무리 자기 투영을 피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"해숙"정도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혼자 추측해 본다.

 

소설 속에서 크게 와닿았던 대사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한철이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.

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,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.

맞는 말이지만 마음 아픈 이유는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해 본 사람들은 아직도 빛을 기다리며 정호처럼 끝을 향해 걸어갈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.

사랑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것처럼,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 예술을 완성할 수 있고 그 연민은 사회에서 값싼 동정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랑으로 나타날 수 도 있지 않을까.

뜨겁게 소비했던 그 시대의 사랑과 투쟁에 대한 에너지를 이 시대의 우리는 모두 어디에 쓰고 있는 것일까.

사랑을 이루지 못한 주인공들은 마치 우리에게 고백하고 사랑하며 살라고 외치는 것 같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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